이윤일(?~1867)과 문경지역 천주교 교우촌

Title
이윤일(?~1867)과 문경지역 천주교 교우촌
Other Titles
Yi Yoonil(?~1867) and Catholic Villages in Moonkyeong area
Author(s)
김정숙
Keywords
이윤일; 박주현; 박사의; 이타대오; 깔래 신부; 여우목; 한실; Yi Yoonil; Park Juhyen; Park Saui; Yi Tadeo; Fr.Calais; Hansi. Yeoumok
Issue Date
201504
Publisher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Citation
민족문화논총, no.59, pp.241 - 282
Abstract
영남지역의 순교자 이윤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主保聖人의 하나로 존중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이윤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필사본 자료인 󰡔병인박해치명사적󰡕과 깔래 신부의 서한을 통하여 확인했다. 따라서 본고는 영남 천주교회사의 상징적 인물인 이윤일의 생애를 밝힘과 동시에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생활을 밝혀보고자 했다. 우선, 본고에서는 이윤일의 가족관계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여 당시의 순교자들이 강한 혈연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윤일은 순교자 박경화, 박사의와 인척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을해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쳐 시대를 달리하여 순교한 사람들간의 연결관계를 살필 수 있었다. 둘째로, 본고는 이윤일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그는 조선에 신부가 한명도 없던 시절에 태어나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12년간이나 감옥에 살고 있던 박사의의 딸과 혼인했다. 그의 장인과 처의 조부가 순교했음은 물론, 병인박해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자신의 두 아들 시몬과 타대오가 순교했다. 이윤일의 집안에서는 사위와 사위의 삼촌, 처의 사촌인 박수산나 등이 순교했다. 그뿐 아니라 두 살 난 손녀는 옥에서 죽었고, 또 자신과 함께 살던 수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윤일의 순교는 그 집안 대대로 굳혀온 신앙의 결과였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터득한 새로운 세계관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 본고는 병인박해기간 여우목과 한실 교우촌이 박해를 견디는 모습과 그들의 향방을 추적했다. 이를 위해서 본고는 깔래 신부가 병인박해 때 8개월이나 피신해 있던 한실에서의 체험을 자세히 적어 놓은 서한 자료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은 󰡔병인치명사적󰡕(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박해기간 동안의 신자들의 생활과 교우촌간의 결속, 및 선교사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을 확인했다. 그리고 폐허화 된 교우촌 신자들이 다른 교우촌을 의지하여 새로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는 19세기의 조선인들이 조정의 압박을 피해 스스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던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32622
ISSN
1229-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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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 역사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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