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mination on Wolgyeongji in the Sphere of Changwondohobu during late Joseon

Title
Examination on Wolgyeongji in the Sphere of Changwondohobu during late Joseon
Other Titles
朝鮮時代 昌原都護府 圈域 越境地 檢討
Author(s)
이수환백지국
Keywords
昌原都護府; 越境地; 莞浦縣; 龜山縣; 大山面; Changwondohobu(昌原都護府); Wolgyeongji(越境地); Wanpohyeon(莞浦縣); Gusanhyeon(龜山縣); Naepohyang(內浦鄕); Daesanmyeon(大山面)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Citation
민족문화논총, no.57, pp.77 - 108
Abstract
본 논문은 所屬邑과 떨어진 채 다른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특수행정구역인 越境地의 실체를 밝히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군현제도의 특징 및 지방사회의 구조와 실태를 파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대상은 昌原都護府圈域에 소재했던 네 곳의 월경지이며, 시기는 1018년(현종 9)이후부터 한말까지로 한정하였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창원도호부권역에는 莞浦縣・龜山縣・內浦鄕・大山面 등 네 곳의 월경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각각 형성된 시기, 위치 등에 따라 형성요인에 차이를 보인다. 완포현과 구산현의 경우 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1108년(예종 3), 내포향과 대산면의 경우 각 각 내륙과 강가에 위치한 곳으로 여말선초 월경지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형성요인은 감무파견에 따른 속현의 독립, 수취체제의 운용, 인구의 이동, 荒地開墾 및 재지세력의 이해관계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鄕・部曲이거나 향・부곡에서 속현으로 성장한 지역이었으므로 영역규모 및 호구수가 주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였다. 이러한 邑勢의 차이는 이들이 월경지로 형성・존속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소속읍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실제 이 지역을 지배하던 토성집단의 경우 주변지역에 비해 열악한 읍세와 더불어 향・부곡이라는 성분으로 인해 중앙에 진출하여 대성으로 성장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주민들 역시 당시 수취체제 구조상 속현으로서 소속읍의 경제적 수탈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향・부곡으로서 특수한 역역도 담당하여야만 하였다. 이들은 월경지인 탓에 가까운 거리의 관부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소속읍의 관아를 왕래하는 등의 이중고를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월경지는 조선시대 지방제도 개혁을 거론할 때 마다 정리되어야 하는 1차적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말까지 존속하였다. 창원도호부권역의 월경지 역시 완포현만이 정비되어 소멸하였고, 나머지 구산・내포・대산 등 세 곳은 한말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정리되어 소멸 된 것 역시 합리적인 행정구역의 정비라는 측면 보다는 그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조건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소멸되지 않고 존속한 것 역시 군현제 변동 외에 당시 정부의 이중적 태도와 해당지역인 소속읍・소재지・월경지, 특히 그중에서도 소속읍의 입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과 같이 창원도호부 권역에 소재한 월경지는 조선시대 지방통치체제라는 큰 틀에서 사회현상, 경제적 관계, 재지세력의 존재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존속하였다. 이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유지되었던 조선시대 지방사회 구조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31065
ISSN
1229-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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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 역사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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