燕式土器文化의 확산과 後期 古朝鮮의 토기문화

Title
燕式土器文化의 확산과 後期 古朝鮮의 토기문화
Other Titles
A Diffusion of Yan(燕) type pottery and kojoseon(古朝鮮)pottery
Author(s)
정인성
Keywords
낙랑토기; 고조선토기; 세죽리-연화보 유형; 전국시대; 燕國土器; Nakrang pottery(樂浪土器); koJoseon(古朝鮮) pottery; Seijukri-Lianhuabao(細竹里-蓮花堡) type; Pot-type(釜形)pottery; Yan type pottery(燕式土器)
Issue Date
201412
Publisher
백산학회
Citation
백산학보, no.100, pp.193 - 242
Abstract
영남지역에서 회도문화인 와질토기의 발생이 낙랑토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더욱 소급된다는 주장이 제시되면서 후기고조선 토기문화의 이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글에서는 後期古朝鮮의 토기문화를 단순히 漢文化를 제외한 무문토기유형에서만 찾으려하는 기존의 이해를 비판하고 在地系 무문토기의 바탕에戰國時代 燕國土器의 기술적 영향이 더해진 것으로 보았다. 즉 세죽리-연화보 토기도 후기 고조선토기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죽리-연화보 유형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전형적인연국 토기와 비교를 통해 형태론적인 측면은 물론 기술론적인 차원에서 상호 비교하였다. 그 결과 세죽리-연화보의 연식토기라는 것이 이미 요동지역에서 특화된 토기라는 것을 밝혔으며 그것이 점토대토기라는 무문토기의 바탕 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뿐만아니라 燕國 釜形土器의 확산이 대릉하나 요하 주변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나아가 세죽리-연화보 유형에는 한대가 되어 새롭게 반입된 연토기 요소를 변별할 수 있었다. 결국 토기문화의 성격으로 보건데 세죽리-연화보에 포함된 燕土器 요소를근거로 전국시대 燕國의 영역지배가 요동을 지나 청천강에 이르렀다는 해석은 문제가 있다. 그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요동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완전히부정하지 않으나 세죽리-연화보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토기문화는 燕國의土器文化가 아니라 後期 古朝鮮의 土器文化인 것이다. 더 이상 미송리형 토기가 고조선 토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분위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南越國의 토기문화에서 드러나듯이 고조선 토기에중원 토기의 영향이 상존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중원 물질문화의영향이 전혀 인지되지 않는 공간에서 고조선과 그 문화를 찾으려는 접근방법에서 벗어나야만 고조선이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30155
ISSN
1225-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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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 문화인류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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