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낙랑고고학

Title
일제강점기의 낙랑고고학
Other Titles
Nakrang Archeology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Author(s)
정인성
Keywords
Nakranggun;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Wiman Joseon; Investigation of historic ruins; Historical view based on colonialism.; 낙랑군; 식민지고고학; 위만조선; 고고학사; 낙랑고분
Issue Date
201102
Publisher
한국상고사학회
Citation
한국상고사학보, v.71, no.71, pp.149 - 170
Abstract
관학자들의 주도로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실시되었던 각종 고적조사와 걸음을 같이하며 시작된 낙랑고고학은 중국관련 유물만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결과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을 고대 중국의 식민지로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든 측면이 인정된다. 관련하여 낙랑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유물소유욕을 크게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낙랑 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도굴을 불러일으키는 수요를 강점기간 내내 만들어 냈다. 그런데 세키노타다시가 중심이 되어 1909년에 처음 실시한 낙랑 유적의 조사는 그 시작부터가 식민사관 창출을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평양에 낙랑고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16년에「古蹟調査委員會」가 발족되고「古蹟및 遺物保存規則」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낙랑유적 조사의 전체적인 배경과 목적이 달라진다. 이때부터 식민사관을 기획하고 指南한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가 낙랑유적의 조사에 집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그와 세키노타다시가 이끌었던 고적조사위원회가 내세운 1차년도 기획조사의 대상이 다름 아닌 漢治郡관련 유적이었다. 조선역사의 저급성과 타율성을 논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인 식민지 낙랑군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물적 증거를 생산해 내는 방편이기도 했던 낙랑고고학은 강점기간 내내 국가권력으로부터 그 효용성을 인정받았다. 반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위만조선을 포함한 고조선의 고고학적 실체는 서서히 사라져 간 것이다. 결국 일제강점기 낙랑고고학의 가장 큰 문제는 고조선을 없애고 그 자리에 낙랑군을 가져다 놓은 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1916년도에 시작된 고적조사 5개년 사업을 한국인이 주도했다면, 그 첫 번째 조사대상은 분명히 고조선의 고고학적 실체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25583
ISSN
1229-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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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 문화인류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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