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도입과 한국가족제도의 변화 ━종법제도의 정착과 부계혈연집단의 조직화 과정━

Title
성리학의 도입과 한국가족제도의 변화 ━종법제도의 정착과 부계혈연집단의 조직화 과정━
Other Titles
性理学的传入与韩国家族制度的变化 ―宗法制度的定立与父系血缘集团的组织化过程―
Author(s)
이창기
Keywords
性理學; 宗法制度; 父系血缘集团的组织化; 祭祀相續; 財産相續; 養子制度; 성리학; 종법제도; 부계혈연집단조직화; 제사상속; 재산상속; 양자제도
Issue Date
201012
Publisher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Citation
민족문화논총, no.46, pp.105 - 137
Abstract
한국가족제도는 부계혈연의식이 강하고 부계친족집단이 공고한 결합력을 가진 대표적인 가족제도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한국가족제도의 특징은 역사가 오래지 않고 대체로 18C 이후에 한국 사회에 정착된 것이다. 성리학이 도입되기 이전의 고려사회에서는 부계혈연의식이 강하지 못하였고, 부계친족집단이 조직화되지도 않았다. 동성(동본)간의 혼인뿐만 아니라 근친간에도 빈번하게 혼인이 이루어졌고, 혼인 후 여자집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서류부가혼이 많이 행해졌다. 부녀의 재가가 별로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다처가 허용되고 첩이나 첩의 자녀가 크게 차별받지 않았다. 재산은 자녀들 간에 균분상속되었으며, 아들이 없을 경우에 딸이 제사나 음직을 상속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고려시대의 가족이 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부계혈연의식이 강하지 못하였고, 부계친족집단이 조직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가족제도의 이러한 비부계적 특성은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고 정통주의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도입되고 이의 실현을 위한 종법제도가 정착되면서 점차 부계적인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성리학은 고려말에 도입되지만 초기에는 소수의 지식인과 일부 지배층에서 수용되고 있을 뿐 널리 확산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성리학을 국가의 지배원리로 채택하지만 왕위의 계승에서부터 민가의 가계계승에 이르기까지 종법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적장자 유고시 차자가 가계를 계승하도록 할 것인지(兄亡弟及), 적자가 없을 때 서자의 가계계승을 허용할 것인지(血統主義) 등에 관해서 많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兄亡弟及과 血統主義가 종법제도의 적통주의와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성리학과 종법제도가 아직 조선사회에 정착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초기를 지나 사림파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성리학이 빠른 속도로 조선 사회에 보급되고 확산된다. 성리학의 자기화(조선화)와 종법제도의 재정립은 왕위계승과 국가의례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여러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족 및 친족제도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가족 및 친족제도의 변화는 17C 중엽부터 18C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적통주의에 입각한 적장자 계승의 원칙이 확립되면서 윤회봉사가 장남봉사로 변화하고, 남녀균분상속에서 장남을 우대하고 여자를 제외시키는 차등상속이 보편화되기에 이른다. 혼인에서도 근친혼이나 동성동본혼이 철저하게 금지되고 남자가 혼인 후 처가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서류부가의 기간도 대폭 단축된다. 적통주의에 위배되는 형망제급과 서자의 가계계승이 배제되고 양자제가 확산된다. 종족촌락과 문중조직이 발달하고 족보의 발간이 성행하는 것도 이 시기의 변화 모습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부계혈연의식이 강화되고 부계친족집단이 조직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18C 이후에 한국사회는 부계의 원칙, 직계의 원칙, 장남의 원칙에 의한 가계계승을 지상의 가치로 인식하는 강력한 가부장제 가족제도를 정착시키게 된다. 집(家)이 개인에 우선하며, 가장이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가족성원은 여기에 예속된다. 가계계승에 참여하는 남자가 우대되고, 그 중에서도 장남이 특별히 우대되며, 부부관계보다 친자관계가 중시된다. 조상숭배의식이 강화되고 동조의식이 확산되어 제사와 족보간행을 비롯한 각종 숭조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동일 조상의 자손들이 문중조직을 결성하여 이러한 사업을 적극 추진해 간다. 조선후기 한국가족제도에서 나타나는 부계혈연집단의 조직화 현상은 신분제도의 붕괴로 인한 노비노동력의 격감, 농경지의 영세화, 붕당정치에 의한 혈연중심의 결합 등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의 보급과 확산, 적통계승의 원칙을 강조하는 종법제도의 정착이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23099
ISSN
1229-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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