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둔과 울릉도 쟁계에 관한 연구 - 한·일 양국 자료를 중심으로 한 고찰 -

Title
박어둔과 울릉도 쟁계에 관한 연구 - 한·일 양국 자료를 중심으로 한 고찰 -
Other Titles
A Study on Park Eo-dun and Bordering Dispute over Ulleung-do - Focusing on Materials of Korea and Japan -
Author(s)
김화경
Keywords
Bordering Dispute; Ulleung-do; Park Eo-dun; An Yong-bok; Byunryejipyo(邊例集要); journal of Seongjungwon(承政院日記); Authentic Record of Sookjongs(肅宗實錄); Jookdogisa(竹島紀事); short history of Gijookdo(嘰竹島事略); article of Jookdo(竹島考); prohibition order to cross the island; 울릉도 쟁계; 박어둔; 안용복; 변례집요; 승정원일기; 숙종실록; 죽도기사; 기죽도사략; 도해금지령
Issue Date
201006
Publisher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Citation
인문연구, no.58, pp.1 - 42
Abstract
본고는 안용복과 더불어 일본에 납치되었던 박어둔을 재평가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1693년 일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었던 사람은 박어둔과 안용복 두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후자를 울릉도와 독도의 수호자로 부추기는 반면, 박어둔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변례집요(邊例集要)』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숙종실록』 등과 일본의 『죽도기사(竹島紀事)』와 『기죽도사략(磯竹島事略)』, 『죽도고(竹島考)』 등을 검토해보면, ‘울릉도 쟁계(鬱陵島爭界)에서 박어둔도 그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자료를 고찰하면서 얻은 연구 성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울릉도 쟁계에서 대마도의 도주는 울릉도에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붙여 일본의 땅으로 만들려는 기도를 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조선 조정의 예조에서는 1도2명설, 곧 하나의 섬을 두고 조선에서는 울릉도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죽도라고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적당히 무마하려고 했었다. 이로 말미암아 대마도 도주는 울릉도란 말의 삭제를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해진 박어둔과 안용복, 그 주변의 진술들로부터 당시에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돗토리 번주나 에도 막부에서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를 하나의 세트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구명하였다. 이것은 일본 외무성에서 에도 막부의 ‘죽도 도해 금지령’이 울릉도에 도해만 금지한 것이고, 독도에 대한 도해는 금지하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큰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서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내어놓고 두 나라의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에 입각해서 공동으로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첨언해둔다.
URI
http://hdl.handle.net/YU.REPOSITORY/22211
ISSN
1598-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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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 국어국문학과 >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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